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고리 쿨리크 (문단 편집) === 최후 === >지원을 위해 투입된 제4근위군의 지휘를 쿨리크가 담당했는데,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 걸 본 적이 없다. >---- >[[게오르기 주코프]] 원수 >전시에 난데없이 [[승용차]], [[소]] 따위를 강제 징발해 다차[* 간이 별장, 텃밭으로 사용되는 작은 건물] 건설을 명령했다. >---- >[[니콜라이 불가닌]] 국방장관 이렇게 독소전쟁에서 아무 활약도 못한데다가, 군에서 불명예스럽게 예편되자, 스탈린에게 반감을 품었고, 그는 계속 스탈린의 뒷담을 하는 등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. 하지만 베리야가 감독하는 NKVD는 도청을 광범위하게 하고 있었는데, 쿨리크는 과거 부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이런 도청에 걸려서 체포되었다.[* 이때 쿨리크와 술 마시며 험담을 하다가 같이 체포된 고르도프 상장과, 리발첸코 소장이 있는데, 이들은 모두 독소전쟁 당시 실책을 벌여서 스탈린의 눈밖에 난 바 있다. 고르도프는 [[르제프 전투]]에서 큰 실책을 범해 스타브카에서 직접 경고장을 받았고, 리발첸코 소장은 1944년 공세에서 무능을 보여 해임된 바 있다. ]스탈린은 이 무능한 부하에게 계속 기회를 주었지만, 자신의 욕을 하다 걸리자,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듯, 1947년 1월 11일에 반혁명적 그룹 가입 등의 날조된 혐의로 [[사형]]을 선고했다. 3년 뒤인 1950년 8월 24일에 쿨리크는 처형당했다. 스탈린 사후 반혁명죄가 날조된 것이 입증되어 무죄 판결을 받고, 1957년 9월 28일에 원수 계급에 복권되었다.[* 이유는 스탈린 비판을 제창한 [[니키타 흐루쇼프]]에 의하여 스탈린에게 정치적 목적으로 숙청당한 이들 전부 명예회복 대상이 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